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Life/Diary

편입이라는 미친 짓

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랑은 아니지만, 작년 3월~12월까지 편입을 공부했고 한군데에 합격했다. 노량진에 있는 학원을 새벽반으로 다니면서 정말 1년 동안 영어공부(정확히는 문법,독해,단어)만 했다. 1년 가까이 노량진을 왔다갔다하면서 느낀 게 많았는데, 편입시험에 대해서는 특히 상당한 반감을 가지게 됐다.

일단 학원에서 그리고 이번에 같이 합격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, 편입시험에 매진하는 이유는 크게 봤을 때 2가지 정도다.

  1. 학교 네임밸류가 좋은 데를 가고 싶어서
  2. 과를 바꾸고 싶어서

첫 번째 이유를 가진 사람 중에서도 '이 학교만 아니면 되'라는 생각을 가진 그룹은 제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, 학원 내에서 가장 많았다. 전문용어(?)로 학력세탁(!)이라고들 한다. 이런 경우 점수가 되는대로 학교를 갈 가능성이 높고, 원서를 쓸 때도 눈치작전은 기본이다. 합격한 뒤에 어떻게 학교를 다닐지는 생각하지 않는 건데, 면접이 있는 학교라면 합격하기 힘들다. 물론 학교를 바꾸는 데에 'ㅇㅇ과는 ㅁㅁ학교가 더 유명해!'라고 자신의 목표가 뚜렷하다면, 그건 나쁘지 않다.

두 번째 이유인 '과를 바꾸고 싶어서'도 역시 2가지 경우가 있는데, 위험한 건 '저 과가 취업이 잘된대'라고 생각하는 경우다. 이런 애들도 상당히 많았는데, 개인적으로는 좀 이해를 못하겠다. 당연히 취업이고 뭐 고를 떠나서 본인이 그 공부를 하고 싶어서 '00과를 갈 거야!'라고 생각하면 딱 괜찮다. 나의 경우가 이거였다.

이래저래 시작은 다 화려하고 열의에 차있긴 하지만, 실제 공부는 그렇지 못하다. 편입시험이 잘못된 이유는 시험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. 편입시험이라는 게 인문계(그리고 일부 자연계)는 영어 성적만 요구한다. 그게 학교 자체 시험이든, 토익이나 텝스같은 공인영어성적이든 간에;;

그런데 왜 영어로만 1차 선발을 하는가? 국어국문, 불어불문, 경영학과, 심리학과 같은 과들을 도대체 왜!! 영어로만(!) 뽑냐는 거다.

이런 상황에서 영어만 학원에서 새벽 6시~저녁10시 까지 공부해도, 영어권에서 몇 년 살다 온 애들과 경쟁이 안 된다. 아무리 1년 동안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밀릴 수밖에 없다. 학원에서 상위권 반에 있을 때, 쉬는 시간에 애들의 대화주제는 '외국생활'이였다. 물론 나는 친구도 안 만들고 조용히 공부만 하기로 맘 먹어서(그리고 난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;;) 듣기만 했다. 거기다가, 토익점수 930 이상인 놈들이 정말 수두룩했다(나는 토익점수도 없는데ㅠㅠ).

그래서 학원에서 권하는 게, 수학을 공부해서 이공계로 편입을 하라는 거다. 편입의 난이도는 대강 ‘일반인문>일반자연>학사인문>학사자연’ 순이기 때문이다. 이공계로 가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... 그래서 결국 수학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 모습이 참 볼만하다. 미적분 기초문제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... 저 상태로 공대 가서 역학? 설계?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.

이러니 편입생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. 이공계의 공업수학이랑 미적분? 당연히 기초로서 필요한 거지만, 그걸 잘한 것과 전공공부는 다른 문제다. 알고보면 이공계로 편입한 학생들은 그냥 백지상태인 경우가 많다. 결국 재학생들이 조별 과제나 프로젝트를 할 때 편입생이 끼면 싫어하는 이유도 당연히 이거다. 한 기계공학과 친구는 편입생이 같은 조 인데 '아무것도 모른다'라고 하든데;; 그런데다 수학도 안보는 몇몇 학교들(영어만으로 선발하는 미친 짓을 하고 있다)은... 생각하기도 끔찍하다.

그래서 나는 편입시험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.

  1. 영어영문이나 국제학부 같은 곳이라면 당연히 영어시험을 봐야 한다. 그걸 학교에서도 할 테니까
  2. 영어영문을 제외한 어문계열은 그 언어로 문제를 내야 한다. 불어불문인데 영어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된다는 게 어이없지 않은가?
  3. 자연계나 공대, 사회과학대, 경영학과 등등은 당연히 대학교 1~2학년수준의 전공시험을 봐야 한다. 지극히 '당연한' 이야기다.

하지만 영어는 확실히 필수이며 세상 살아가는데 중요하다는 점은 나도 관심 가는 분야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고 있다. 그 부분은 전공시험을 아예 영어로 문제를 낸다던 지 해서 보완 할 수 있지 않을까?


내가 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4~5월 정도에 들었던 생각은 사실 이랬다.

편입이라는 건, 처음부터 승자가 정해져 있는 게임이 아닌가?

편입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일반편입의 인문계열로 있던 나에게는 저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. 나도 영어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옆에 있는 애들은 이미 기본수준이 나보다 위였으니까... 결국엔 끝까지 버텨서(!) 한군데 합격하긴 했다. 학원에서 이야기하는 고-서-성-한 / 중-경-외-시 라인은 아니다. 하지만, 내가 원하는 과에 편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은 기쁘다.

확실히 편입은 만만하지 않다. 도중에 포기하는 애들도 많다. 재수하는 애들도 많다. 그래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.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이 바뀌지 않는 한은...